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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자와 대구 남자의 장거리 연애
‘대구’하면 어떤게 떠오르세요? 라는 질문에 고민 없이 ‘장거리연애’ 라고, 대답했다. 시간이 꽤나 흘렀지만, 여전히 나의 무의식에 대구는 그 이미지로 남아있나 보다.처음으로 혼자 떠났던 제주 여행,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투리가 매력적이었던 대구 남자. 나는 이때만 해도 ‘운명’이라는 게 진짜 있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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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이 한 “대구 한번 놀러 오세요”라는 는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무작정 KTX티켓을 끊고 내려갔던 대구. 돌아오는 KTX 티켓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편도 티켓을 끊고 내려갔던 무모함조차 설렜던 시간. 아무런 계획 없이, 인생 처음으로 동대구역이라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된 장거리 연애. 내 팔자에 장거리 연애가 있으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이제는 흐릿해진 그 추억을 기억해 보려고, 그 당시 썼던 일기장을 뒤적이다 행복하고 설렜던 순간의 기록을 발견했다. 소소한 이벤트도 다 기록해 둔 일기장을 보니 이때 나 참 귀여웠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보진 못했도 한 달에 두 번 이상은 KTX를 타다 보니 모든 데이트가 나에게는 여행 같았다. 남자친구는 항상 동대구역 도착시간에 맞춰서 KTX 역으로 픽업을 와주었고, 서울행 KTX 출발시간에 아주 꼭 맞게 알차게 데이트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어쩌면 그때는 서울에서 대구로 가는 것이 힘들었던 회사 생활에서 한번씩 도망갈 수 있었던 도피처였던 것 같기도 하다.
뚜벅이였던 나는 그때 만났던 사람 덕분에 차를 타고 대구와 청도, 구미까지 많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동성로는 강남만큼 복잡한 번화가였고, 잠실 롯데월드 같은 느낌의 스파크 랜드도 기억난다. 수성못은 석촌호수보다 큰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빌딩 숲이 가득한 서울에서 찾기 어려운 산골짜기 대형 카페까지.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 그때 대구를 가보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대구에 갈 일이 없지 않았을까? 아마 북페어로 처음 대구를 가보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한 달에 한두 번 KTX를 타는 것이 기다려졌고, 지하철보다 KTX를 타는 것이 더 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경기도 본가에 가는것도 2시간, 대구에 내려가는 것도 2시간이지만 멀다고 본가는 잘 가지도 않았으면서 대구는 꼬박꼬박 어떻게든 시간 내서 내려갔던 때였다 (엄마 미안…). 매일 타는 지하철에서는 빠른 환승을 위한 게이트가 어디인지, 대구에 내려가는 기차를 예매할 때는 출구를 가장 빨리 가기 위한 탑승 칸이 어디인지 기억하며 예매했던 게 생각난다. 환경 생각하지 않고 내 감정에만 몰입했던때가 살짝 그립기도 하다.
그렇게 KTX 올라타며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던 길이 여행처럼 느껴져 설렜는데, 어느 순간 대구에 가는 것이 여행처럼 느껴지지않았고, 그 이후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나는 장거리 여행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대구는 내게 ‘장거리연애’를 남겼다.